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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 때려치고 꿈을 찾아간 곳

“제가 커리어에서 큰 변화를 겪을 때마다 꼭 1~2명의 사람들이 도움을 줬어요. 그분들은 선배된 도리에서 후배에게 Pay-it-forward를 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저와 비슷한 커리어 고민을 하시는 분에게 그 경험을 나누며 제가 받았던 도움을 Pay-it-forward 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 최호준
여러분이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삶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전공을 따라서…, 남들이 좋은 회사라 해서…, 어쩌다 살다 보니…’와 같은 이유로 커리어를 선택하곤 합니다. 그래서 막상 1~2년이 지나면, ‘정말 내가 원하던 일을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지만, 바쁜 현실을 핑계로 오늘도 하염없이 매번 다니던 길로 출근합니다. 이러한 의문을 지닌 직장인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커리어를 진단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권을 거쳐 현재 법률 스타트업 ‘로앤굿’의 CSO로 있는 최호준 님은 두 번의 커리어 변경을 통해 세 개의 다른 분야를 경험하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하는데요. 커리어와 함께 성장하며 자신의 비전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죠.
최호준 로앤굿 CSO (출처: 최호준 페이스북)
최호준 님은 변호사 비교 견적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 ‘Law&Good(로앤굿)’에서 CSO(Chief Strategy Officer; 최고 전략 책임자)로 근무 중입니다. 이전에는 ‘Goldman Sachs’ 홍콩 지사와 ‘Macquarie Group’을 거치며 주식 파생 상품 및 구조화 금용부터 실물 자산의 인수, 기업 합병 및 레버리지 바이아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외교관을 꿈꾸던 서울대생, 현실을 마주하다

Q.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국제적인 업무를 해봐야겠다는 막연한 계획이 있었어요. 자유전공학부 재학 중 외교통상부 장관이셨던 윤영관 교수님의 ‘국제정치학 개론’ 수업을 수강하며, 해외 지도자들을 만나 직접 협상했던 이야기를 들었어요. 현실에도 마치 삼국지 같은 서사가 있었고, 특히 소수의 지도자가 만들어가는 임팩트가 멋있었어요.
미국의 외교 전설인 ‘헨리 키신저’의 책 <Diplomacy>와 수업을 통해 민감한 상황에서 힘의 균형을 맞춰 분쟁을 방지하는 과정과 때론 실수로 전쟁이 일어난 역사를 배웠어요. 이러한 사건의 시작이 국가수반 내지는 외교관이었고, 이들의 전략적 사고가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임팩트를 낸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도 외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Q. 그런데 왜 관심 분야가 외교에서 경영으로 바뀌었나요?

새내기 시절의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은 ‘이런 거 하면 멋지겠다.’ 정도에 불과했어요. 그래서 때가 되면 외무고시를 보고 멋진 외교관이 되겠거니 하는 공허한 계획만을 세웠었죠. 그러고 2학년 때 군대를 2년 남짓 다녀오고 나니 이제는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을 할지 말지 결정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국립외교원에 지원하기 전에 이 길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했어요.
제70회 유엔의 날 기념 리셉션에서 한 컷(출처: 최호준 페이스북)
친구인 세종이와 함께 세계모의유엔(NMUN)에 참여하여 외교관 간접 체험을 해봤어요. ‘국가를 대표해 어떤 대화를 어떻게 하는가?’, ‘세계에는 어떤 현안이 있는가?’ 등 배울 좋은 기회였어요. 그러나 공부하다 보니 같은 아젠다(agenda)가 국가 간 이권과 정치적인 이유로 수십년 째 진척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가령, 기후 변화 대응의 경우 패권 국가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장이 달라지는 식인 거죠.
이러한 정치 외교의 한계에 반해 비즈니스가 끼치는 영향력은 그 이상이었어요. 아까 말씀드린 기후 변화 대응도 수십 년간 지지부진하다가 일론 머스크의 ‘Tesla’가 전기차를 만들고 나니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대가 저물어가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것을 보며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임팩트’를 내기 위해 외교 그 이상으로 비즈니스가 더 효과적이라고 깨달았어요.

Q. 몇 년간 꿈꿔온 외교 대신 새로운 분야를 선택할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그 당시에는 엄청 막막했었죠. 금융에는 수학이 많이 사용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저는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잘한 선택일까 걱정도 됐어요. 그런데 모의 유엔을 경험하며 외교관이라는 커리어가 저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과정에서 성과주의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의 직무나 조직에 욕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 공부해보자는 마음에 경영학 전공을 선택하고 뱅킹 혹은 컨설팅 쪽 커리어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외교관이 되겠다고 불명확한 계획을 세웠던 게 수포가 되는 것을 보면서, 의미 있는 계획이 되려면 커리어를 선택할 때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Q. 그렇다면 호준 님은 어떤 목표를 갖고 커리어를 선택하셨나요?

‘더 빠른 성장에 대한 갈망을 채우겠다.’라는 목표가 가장 컸어요. 그래서 민간 부문(private sector) 중 어떤 분야에서 이 목표를 가장 잘 이룰 수 있을지 고민했고, 뱅킹(banking)의 경우 주니어 때부터 다양한 산업군을 경험해볼 수 있고, 큰 규모의 클라이언트를 만날 수 있으며, 매우 경쟁적인 환경이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사관학교 같은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커리어를 선형(linear)으로 생각하고 최단 거리 진로를 찾으려 노력했어요.

IB와 PE를 거친 화려한 직장인, 내면의 진짜 자신을 발견하다

골드만삭스 사무실에서 부모님과 찍은 사진(출처: 최호준 페이스북)

Q. 외교를 전공하다가 금융권으로 처음 넘어갔을 때 그 시작은 어땠나요?

외교 분야에서 금융권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한중리더십 알럼나이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사모펀드 다니던 형이 있었어요. 지금은 ‘하이퍼리즘’ 대표인 오상록 님인데, 사칙연산만 하면 저도 충분히 금융권에 갈 수 있다면서 FCRC라는 금융학회를 소개해줬어요. 그래서 그 학회에 들어가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려 노력했어요.
그러고 첫 인턴을 구하려고 지원서를 몇 개 넣었는데, 넣을 때마다 떨어지는 거예요. 시작이 정치 외교라 아무래도 남들보다 늦겠거니 했지만, 이 정도로 남들과 격차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금융권 인턴을 한 번이라도 하는 게 너무나 절실해서 각종 취업 공고가 올라오는 학교 경력개발센터 사이트를 10분에 한 번씩 새로고침을 하며 금융권 회사에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읽어보니 ‘Rolling Basis(선착순 검토)’여서 매번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곧바로 메일을 보냈어요. 그 덕에 ‘홍콩 상하이 증권(HSBC)’에서 첫 인턴십을 할 기회를 얻어냈어요. 나중에 세보니 100개가 넘는 레쥬메(지원서)를 넣었더라고요.
맥쿼리그룹 인턴 당시 사진(출처: 최호준 페이스북)

Q. 금융권 인턴의 삶은 만족스러웠나요?

당시 제 커리어의 키워드는 ‘경쟁’이었어요. ‘홍콩 상하이 증권(HSBC)’ 인턴 뒤에도 ‘맥쿼리 PE(Macquarie PE), ‘홍콩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에서 인턴을 했어요. 골드만삭스에서는 채용 전환형 여름 인턴십이었는데 제가 유일한 한국인이었거든요. 당시 한국인이었던 상무님이 이렇게 이야기하셨어요.
너를 뽑을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인턴들보다 월등히 더 잘해야 한다.”
그런데 저는 떨어지면 대학교 5학년이 되는 거였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마땅히 할 일도 없어서 거의 배수의 진을 친 상태였어요. 엄청나게 절실했기 때문에 밤낮없이 매일 새벽 3~4시까지 일하고, 주말도 반납해가며 일에 몰두했어요. 그 결과, 홍콩 골드만삭스 Analyst로서 첫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골드만삭스 재직시절 사원증(출처: 최호준 페이스북)
맥쿼리그룹 재직시절 사원증(출처: 최호준 페이스북)

Q. 그래서 ‘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셨나요?

짧은 시간 동안 밀도 높게 일하고 배우며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투자 은행(IB)인 골드만삭스에서는 전문성의 기초를 닦은 ‘학습의 시간’이었고, 그 뒤에 이직한 사모펀드(PE)인 맥쿼리그룹에서는 배운 것을 사용해볼 ‘응용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일하다 보니 주니어 때 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었고, 높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컸어요. 그리고 업무들이 정형화되고 반복적이라 ‘나는 그냥 회사원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토록 원하는 커리어였는데, 예상과는 달랐던 건가요?

사실은 첫 인턴을 할 때부터 ‘내 적성에 잘 맞는 일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등의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이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어요. 마치 터널에 들어갈 때 중심부만 보이고 주변은 잘 보이지 않는 ‘터널 비전’ 같은 상황이었죠. 일단 금융권 커리어를 쌓고 성장하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더 중요한 핵심을 잃어버린 거예요.

Q. 목표였던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시간이 지나니 목표했던 ‘성장’을 어느 정도 달성해가는 게 보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회사에서 도무지 재미를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루틴한 삶과 상사와의 소모적인 시간 때문에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죠.
한번은 한국 클라이언트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제가 팀 내 유일한 한국인이었기에 모든 커뮤니케이션 리드를 맡으며 많은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었어요. 보통은 최소 7년 차에 프로젝트 리드를 할 수 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부분이나마 리드로서 ‘총대’를 메보며 일하니 정말 재밌고 행복했어요. 매번 하는 일 말고 제가 제안하는 방향과 방식이 많이 수용됐었거든요. 그래서 이때 저는 특정 분야에만 전문적인 Specialist보다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Generalist로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문제해결자가 되겠다.’라는 비전을 세웠어요. 그래서 전통 금융권과는 문화가 다른 스타트업에 가면 이처럼 직접 무언가를 해볼 기회가 많지 않을까 싶어서 스타트업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인 커리어 점프를 준비하기 시작했죠.

문제해결자로 환골탈태한 금융전문가, 총대를 메다

Q. 전통 금융권에서 스타트업으로 넘어가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맞아요. 이른바 ‘금융쟁이’들은 리스크를 발견하는데 훈련이 되어있어서 잘 안될 것 같은 부분만 찾는 습관이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스타트업을 만나보며 스타트업들이 어떤 가능성을 보며 사업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20개 정도의 스타트업을 꾸준히 만나면서 ‘시장의 문제를 이러한 솔루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구나’, ‘이 회사는 지금 이러한 고민이 있구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을 보는 저만의 기준이 생기더라고요.
로앤굿 사무실에서 일하는 최호준 님(출처: 로앤굿 소개페이지)

Q. 그 기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지금 다니고 있는 ‘로앤굿’을 선택한 세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아요.
①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볼 수 있는 초기 단계
초기 단계(early stage) 스타트업에 참여하면 개인이 해볼 수 있는 것도 더 많고, 조직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임팩트를 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초기 단계라면 질서보단 무질서에 가까울 것 같아서, 금융권 커리어에서 깨달은 것처럼 ‘총대를 메고’ 일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시드(seed) 단계나, 시리즈 A 단계를 가야겠다고 판단했어요.
② 스타트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산업군보다 스타트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공감하는 게 더 중요해요. 그래서 사실 딥테크 스타트업으로 가면 기술 배경이 적은 제가 문제와 솔루션의 적합성을 알 수 없어서, 비즈니스 쪽 문제를 푸는 산업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중 법률 시장에서 의뢰인과 변호사 양쪽의 문제를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여 해결하겠다는 ‘로앤굿’의 솔루션에 공감했어요.
③ 어떠한 사람들과 함께하는지
지금의 대표님과 처음 만났을 때 상당히 리더십이 있는 분이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제가 재무/전략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어서 변호사 출신의 대표님과 상호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특히, 역할을 크게 위임해주셔서 단순히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해볼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팀원들 모두 열정 넘치게 일하는 분들이라 함께 하면 즐거울 것 같았어요.

Q. ‘로앤굿’에서 호준 님은 어떤 부분에 ‘총대’를 메고 있나요?

로앤굿의 CSO(Chief Strategy Officer; 최고 전략 책임자)로 근무하며 전략과 투자 유치를 리드하고 있어요.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실무적인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 팀이 만드는 서비스가 플랫폼 유저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여 가격을 인정 받고 매출을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단기적으로는 수익화를 통해 규모를 키워서 원하는 수준을 달성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로앤굿이 리걸테크 분야의 슈퍼 서비스가 되어 소송 전 과정을 책임지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 중이에요.
제주도 바다 앞에서 한 컷(출처: 최호준 페이스북)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제가 ‘외교에서 뱅킹으로, 그리고 금융권에서 스타트업’으로 오기까지 큰 변화를 겪을 때마다 꼭 1~2명의 사람들이 도움을 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도움이 저에게는 매우 큰 영향을 주었고, 그분들은 선배된 도리에서 후배에게 Pay-it-forward를 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세종이가 fireside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 취지에 공감하며 함께 하기도 했어요. 앞으로는 저와 비슷한 커리어 고민을 하시는 분에게 그 경험을 많이 나누며 제가 받았던 도움을 Pay-it-forward 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데미안>을 쓴 헤르만 헤세는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에 집착하며 치열하게 자기 삶을 이해하는 것이 혼란하고 황폐해버린 시대에서 살아남을 방법이라고 전달합니다.
‘회사는 전쟁터’라는 표현이 있는 만큼 직장인으로서 우리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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