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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가나도 모르던 고등학생이 일본 변호사가 되기까지

백지상태에서 시작했지만 치열하게 도전하다 보니, 꼭 필요한 순간마다 주변에서 소중한 기회를 주셨어요. 결국 제 삶의 터닝포인트는 항상 새로운 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있었고, 저는 그 기회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죠.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회'의 순간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기회'를 나누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pay-it-forward’가 아닐까요?” - 이지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길, 검증된 길을 좋아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내 삶의 이정표로 삼곤 하죠.
하지만 여기,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서 엄청난 기회들을 잡아낸 사람이 있습니다. 10대의 끝 무렵, 히라가나도 모르고 간 일본에서, 게이오 법대, 와세다 로스쿨과 일본 유명 로펌을 거쳐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법무팀장이 되기까지, 새로운 인연들이 전해 준 블루오션 속에서 삶의 ‘기회'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삶을 그려 나간 이지혜 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이지혜 Krust Universe (이하 ‘크러스트’) 법무팀장 (출처: 이지혜 링크드인)
이지혜 님은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크러스트'에서 법무팀장으로 근무 중입니다. 일본 게이오 법대와 와세다 로스쿨을 거쳐, 일본 유명 로펌인 ‘City-Yuwa Partners’에서 4년간 근무했습니다. 2018년부터는 카카오 그룹으로 조인하며 리스크 관리, 법무 자문, 대외적 메시지 조정 등 카카오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한 법무 영역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백지상태로 시작한 일본 로스쿨 생활

Q. 왜 일본에서 법대를 진학하셨나요?

초등학생 때 저와 생일이 같은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읽다가, 그와 같은 인권 변호사를 꿈꾸게 되었어요. 막연히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어머니 친구분을 통해 일본 유학의 장점을 듣게 됐어요. 일본어를 배워 본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길이었지만 호기심에 ‘한 번 직접 확인해보자’ 싶었죠.
3개월짜리 관광비자를 받고 무작정 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여기다 싶었어요. 노약자들을 위해 기울어지는 버스부터, 일상 곳곳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일본의 문화에 반해버렸거든요. 히라가나도 잘 몰랐지만, 일본 대학에 꼭 가고 싶다는 의지로 6년 치 입시 기출문제를 6번씩 푼 끝에, 일본 게이오 대학 법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죠.

Q. 일본 법대 생활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진짜 엉망진창이었어요. 일본어가 어눌해서 편의점에서조차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첫 수업부터 일본 헌법이 등장했지 뭐예요. 당연히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죠. MP3를 들고 다니며 모든 수업을 녹음했고, 집에서 듣고 또 듣기를 반복했어요.
그럼에도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친구들과 교수님이 적극적으로 공부를 도와준 덕분에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친구들은 자기 노트를 먼저 빌려주고 심지어는 절 위해 영어로 필기해 준 친구들도 있었어요. 교수님께서는 ‘모든 필기를 일본어로 해 보라’, ‘동문회에 가서 인연을 넓혀라’ 등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죠.

Q.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걷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일본에서 법을 공부하는 유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제게 선례가 없다는 건, 기회가 많다는 의미로 다가왔어요. 블루오션이니까요.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변호사가 없어 고민하던 제게, 교수님은 그렇기에 제가 더 귀하다며, “나는 한국 자체를 좋아하진 않지만, 너를 응원하고 싶어. 네가 꼭 일본에서 변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교수님의 추천으로 간 와세다 로스쿨에서는 향후 변호사 활동에 중요한 기회를 준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죠.

Q. 한국어로도 어려운 로스쿨과 사법연수원 생활, 힘들지는 않았나요?

매년 동기들의 30%가 유급하는걸 보고,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일본인 친구들도 떨어지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죠. 하지만 제가 발견한 재미난 사실은, 법학 용어는 일본인들에게도 외국어처럼 들린다는 거예요.
일본 동기들과 제 출발선이 같다는 마음가짐으로 보낸 로스쿨 생활이 끝나고 나니, 유학생 신분의 저는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사법연수원의 셀럽'이 되었어요. 덕분에 동기와 교수님들이 각종 모임 자리에 초대해주셨고, 전 NHN재팬 대표이자 현재 ‘코코네(아바타 소셜앱)’ 대표이신 천양현 회장님과 저녁을 함께하게 되었죠. 같은 유학생 출신인 저를 자랑스러워 하신 천 회장님께선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웃으며) 고민 상담부터 업무 의뢰, 좋은 분들 소개까지, 안 받은 도움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 고객을 독차지하는 일본 유명 로펌 변호사가 되기까지

Q. 일본에서의 첫 커리어는 어떠셨나요?

사법 연수를 마친 후에는, City Yuwa Partners라는 로펌에 입사했어요. 당시에 한국팀을 키워가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한국어가 가능하다 보니 모든 한국 관련 일에 투입이 되기 시작했어요. 일이 너무 많아서, 아침에 출근해서 다음 날에 퇴근하는 ‘1박 2일 인생'이 계속됐었죠. 어떤 날은 3일씩 집에 못 가기도 했고, 새벽 4시에 퇴근하면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이지혜 님이 근무하신 일본 로펌 ‘City-Yuwa Partners’ (출처: City-Yuwa Partners 홈페이지)

Q. 밤샘 업무 등 육체적 피로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요?

우선, 한국인인데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었어요. 몇 안 되는 한국인 일본 변호사다 보니, ‘내가 민간 외교관이다'라는 생각으로 주말까지 반납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SK-도시바 메모리 인수 당시에는, 3년차 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메인으로 담당하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일본 진출을 꿈꾸지만, 일본 법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여기서 더 많이 배우고 빠르게 성장해서, 회사 설립부터 일반 자문까지 모두 제공하는 원스탑 서비스의 로펌을 설립하겠다는 꿈이 생겼어요. 그때부터 종종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에서 연락이 오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도와드렸고, 저연차부터 제 클라이언트를 갖게 되는 감사한 일도 생겼죠.

Q. 카카오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카카오도 로펌 근무 당시 만난 클라이언트 중 하나였어요. 천양현 대표님이 40년지기 절친분이 일본에 오셨다며 소개해주셨는데, 알고 보니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님이셨죠. 마침 카카오에서 일본 인력이 필요해 외부 카운슬러로 일하게 되었고, 일정상 불가능한 업무였음에도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다보니 저를 좋게 봐주셨고, 또 하나의 인연이 되셨죠.

김범수 의장의 스카우트를 받고, 블록체인 업계 변호사로 도약하다

Q. 블록체인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2017년에 운명 같은 일이 있었어요. 일본의 ‘자금 결제법'에 ‘가상통화'에 대한 정의가 들어가기 시작한 거죠. 금융청에서 가상통화 관련 사업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즈음, 저도 이 분야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어요. 블록체인의 ‘프로토콜 이코노미', 즉 사람들이 기여한 만큼 리워드를 받아 갈 수 있는 구조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때마침 일본에 오신 김범수 의장님과 저녁 식사를 했는데, “가상화폐 좀 알아?”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술술 이야기를 꺼내니 반가워하셨고, 카카오 합류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Q. 로펌에서 쌓던 커리어를 두고 떠나는 게 쉽지 많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저는 여기에 꿈이 있다며, 솔직하게 말씀드렸죠. 하지만 카카오의 외부 카운슬러로서 일을 잘 마무리하고 나자, 한번 더 제안을 주셨어요. 고민하고 있던 제게 당시 카카오페이지 이진수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인생에 기회는 몇 번 없고, 그 기회는 결국 외부에서 주어진다. 이건 한번 놓치면 다시 오기 어렵다.” - 이진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
그 말씀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지금껏 제 삶의 궤적도 다른 분들이 주신 기회를 통해 그려 나갈 수 있었거든요. 직책, 연봉 그 어느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눈앞에 로켓이 있으면 타야지"라는 의장님의 말에, 그 로켓을 타봐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외부 카운슬러가 아니라 인하우스 소속으로 근무하면서, 나만의 것을 키워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거죠.

Q. 그 ‘기회'를 발판 삼아 또 어떤 도전을 하고 계신가요?

카카오 합류 이후 여러 경영진 분들의 업무를 지원하다가, 그라운드X 대표셨던 한재선 대표님의 요청으로 본격적인 블록체인 필드에 투입되었어요. 클레이튼 메인넷 런칭 이후에는, 카카오의 의장실에서 미래 사업에 관한 전략과 블록체인 자회사 ‘크러스트' 세팅을 위한 업무를 진행하였고, 현재는 크러스트에서 전반적인 법무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업계에 들어온지 벌써 5년이 되어가지만, 블록체인 관련 법무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세상을 더 공정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제 도전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당시 그라운드X CEO셨던 한재선 대표님 (출처: 네이버 뉴스)
카카오의 글로벌 사업 출발지, ‘크러스트 유니버스’와 ‘클레이튼’ (출처: 크러스트 홈페이지)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제 삶의 터닝포인트들은 항상 사람에게 있었어요. 일본 로스쿨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삶을 바꾼 결정적 기회들은 결국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었죠. 제가 생각한 가장 아름다운 ‘pay-it-forward’는 이러한 기회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거예요.
저 또한 사람과 기회들을 연결시켜주며, 사람들이 각자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블록체인 관련 법무 업무, 여성 리더십, 일본 법무 등 어떤 영역에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기회를 pay-it-forward 하는 건 늘 기쁜 일이랍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나는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좋아한다.” - 아브라함 링컨
이지혜 님을 처음 변호사의 길로 이끌었던 링컨도 어쩌면 pay-it-forward의 선구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받은 도움을, 내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방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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